By 선교부

지난 6월, 미국 방문 중이신 김영화 선교사께서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셨다.

간단한 가족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85년도에 결혼한 제 아내가 있고, 두 아이가 있는데 첫째는 하람 86년생이고, 둘째는 예람이 대학교 3학년입니다. 장인, 장모님은 은퇴하신 후에 새크라멘토 지역에, 부모님은 산호세 지역에 살고 계십니다. 84년도부터 장년이 100명 정도였을 때 산호세제일침례교회(지금의 뉴비전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은 때는 언제였고, 특히 캄보디아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끄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질문에 감사합니다.
저는 처음에 목회의 소명을 가지고 80년대 초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으로 알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제가 목회의 소명을 가진 사람인 것을 알고 결혼했으면서도 나중에는 오리발을 착 내밀었어요(웃음).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기다렸고 20년 동안 아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아내가 걱정했던 것은 사모로서 말이나 행동이 교회 내에서 회자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목회자로서의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National Semiconductor 회사에 다니며 part time으로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콜로라도 골든게이트 신학대학 분교에서 2년간 선교학을 들으면서 세계 선교의 흐름과 선교 사명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 베트남 국경 산악 지대에 사는 원시 생활에 가까운 종족들을 찾아가서 선교 탐방을 하는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얻었습니다. 그 때 저의 대답은 하나님께 경솔하게 “하나님 농담도 심하게 하시네요!” 였습니다(웃음).

동아시아에서는 여러 가지 선교에 대한 제약이 있기 때문에 기업체를 설립하든지 기업체에 들어가 주재원으로 위장하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때 떠오른 기업이 삼성이었습니다. 삼성에 들어간 후 위장하고 그 동아시아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는데, 결국 삼성전자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미국에서 지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지사장으로 지내면서 중국으로 가기 위해 동아시아로 자주 가 보았지만 동아시아에서 파견된 삼성 과장급/부장급은 아방궁을 차린 듯 지나치게 호화롭게 살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곳을 방문한 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물으셨어요.

“너는 나를 위해 내려 놓은 것이 무엇인가?” 저는 하나님께 다시 질문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중국에 들어 가는 것 아닙니까?” 결국,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조직 개편과 함께 삼성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기도 중에 캄보디아가 생각이 났으며 캄보디아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선교사 부부와 만나게 되어서 2005년에 캄보디아에 나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임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사역 시작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2005년에 저를 초청하신 선교사님과 함께 캄보디아에 들어 갔을 때, 신학교 설립이 준비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백 투 예루살렘 (Back To Jerusalem: 복음의 전파가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로마, 유럽, 미주, 아시아, 중동, 예루살렘(땅끝)으로 이루어지는 선교의 세계적 흐름: 편집자 주)을 통해 선교 흐름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지인 팀이 필요한데 복음적인 요소를 믿고 맡길 만한 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장 최선의 전략을 학교에서 찾았고, 동아시아와 달리 선교적인 제약이 없는 캄보디아에서 정규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젊은 세대를 양육하여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일꾼을 배출하는 전진 기지로 활용하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슬람권이 막대한 석유 자금을 이용해 전세계적인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캄보디아에서는 상황이 어떤가요? 이것에 대한 선교적인 전략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이슬람은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나라에 많은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도시들 중에 몇몇 도시들은 이미 이슬람교인 숫자가 크리스천 숫자를 넘어선 곳도 있고 한국도 3만 명 이상 이슬람교인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소수 민족 중에 (4%) 짬족이라고 있습니다. 이 짬족은 거의 100% 이슬람화 되어 있고, 이슬람권의 선교 자금의 유입으로 메콩강에서 살던 이들이 3-400 가정이 한꺼번에 캄보디아 곳곳으로 집단 이주를 하여 이슬람권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몬둘끼리에도 짬족 마을이 최근에 들어와 있습니다. 몬둘끼리가 길도 험하고 잘 개발되지 않았던 산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에 불러주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답사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사역들이 그 때 주신 비전들입니다(교회 개척, 여호수아 아카데미, 농업 사역). 교회 개척도 짬족 마을로 직접 들어가 개척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그 주변 마을인 부츠리 디에이와 부탕 마을에 교회 개척을 통해 기반을 닦은 다음 짬족에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들 이슬람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을 곳곳에 세워야 합니다. 한 번 이슬람의 깃발이 꽂힌 곳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100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선교사들의 90%가 프놈펜 (캄보디아의 수도)에 몰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 사역하는 것을 돕고자 맥(MAC: Mission Alliance of Cambodia)을 설립했습니다. 원활한 대정부 관계를 통해 선교사들이 지방 사역을 시작할 때 필요한 정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맥(MAC)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맥(MAC)을 설립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사실, 맥과 같은 단체는 선교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주로 선교사들은 후원하는, 또는 파송하는 단체나 교단에 소속하여 활동합니다. 그런데 맥과 같이 초교파적으로 협력하여, 모든 선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프라를 만들어 놓고 문을 개방해 놓은 사례는 선교 역사상 없었던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 오해가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한인 선교 사회가 있습니다.

맥은 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선교사들을 포함합니다. 처음에 한인 선교 사회로부터 ‘왜 단체가 있는데 또 다른 단체를 만들어 따로 사역하는가?’ 라는 시기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고자 하는 사역의 취지를 알고 이해해 주고 참여하는 쪽으로 많이 돌아섰습니다. 맥에 대한 큰 그림은 태국에서 8년간 선교사로, 아세아 신학대학에서 10년간 교수로 있으셨던 한 분이 가지고 계셨고, 그 분과 함께 사역하면서 맥 활동에 제가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맥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동안 제 개인적인 시간과 물질을 많이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뉴비전교회에 감사한 것은 선교 단체가 아닌 뉴비전교회에서 파송 받았기 때문에 전국적인 선교사들을 섬기는 이 일에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선교 단체에서 파송 받았다면 주된 선교지 사역이 아닌 맥과 같은 초교파 사역에 관여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고 제한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아카데미 사역과 농업 사역의 취지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처음에 신학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그곳에 모인 동기가 영어 교육, 컴퓨터 학습, 숙식 제공 등의 조건 만을 보고 들어온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정작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유치원부터 세뇌교육을 시켜 자살폭탄을 시도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전사를 키워냅니다. 이런 이슬람 세력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참된 리더십과 인격을 형성시키기에는 대학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앞섰기에, 중학생부터 가르치는 여호수아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유치원 교육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사실 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데에는 쉽게 선교헌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학교를 운영하는 자금은 얻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교를 운영하는 자금에 대해서는 농업선교의 그림을 주셨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좋은 농업으로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몬둘끼리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전국에 학교 운영 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도 초기에 외국 선교사님들이 땅과 건물들, 교회들, 학교들을 설립해서 한국에 남겨주지 않았습니까? 캄보디아의 기독교 성장을 위해 뭔가를 그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때입니다.

캄보디아의 문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발견한 캄보디아 문화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보통 크리스천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이 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러한 체계가 약합니다. 어떤 법칙이 정해지면 끝까지 지켜 나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할 때 언제든지 게임이나 법칙을 바꾸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관계성을 중시하고 이해관계의 득실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행동이 다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충성심과 봉사, 헌신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아버지에게 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에게 질이 안 좋은 친구(A)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그 친구와 놀지 못하게 한다고 합시다. 하루는 아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는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나쁜 친구(A)에게 가지 마라고. 아들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집을 나섭니다. 아들은 또 다른 친구(B) 집에 들려 그 친구(B)와 같이 나쁜 친구(A) 집에 놀러 갑니다. 그곳에서 실컷 놀고 난 후 돌아 오는 길에 다른 친구(B) 집에 들려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나쁜 친구(A) 집이 아닌 또 다른 친구(B)집에서 놀았다고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얘기합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버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아버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이 정직의 개념이 사뭇 다릅니다.

같이 동역할 전문인 사역자들을 기도하면서 모으고 계시는데요. 선교사 지망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을 말씀해 주세요.

선교사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했습니다. 신약에 등장한 동역자들이 물론 목회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신도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은사와 전문성을 살려서 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발전시키면 그 방면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젊은 선교사 지망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결정하지 말고 너무 좁은 안목으로 선교 사명에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인턴 사역도 권장합니다. 인턴을 통해 “선교사로 부르심이 확실한가? 내가 여기에 적응 할 수 있는가? 내가 진정 목숨까지 내어놓으면서 이 나라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가?” 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다. 현재 선교가 필요한 많은 나라 가운데 문호가 활짝 개방된 캄보디아가 주님의 일꾼을 기르기에 훈련하는 정말 적절한 전략적 선교지라고 생각합니다.

부츠리 디에이 교회 건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현지 사역자와 교인들의 반등과 참여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사역 시작한 지 5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도들의 모임이 형성되기도 전에 교회 건물이 먼저 지어지게 되면 교회를 식사하는 곳이나 구제물품 나누어 주는 곳으로 인식하며 오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의 모임이 생긴 후에 교회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부츠리 디에이 교회는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교인들 대부분이 화전민이기에 모두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이 참여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한 대가족이 여러 가지로 나서서 시간과 기도와 헌금으로 참여를 하였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뉴비전 교회 성도들께 드리고 싶은 긴급한 기도 제목을 알려 주십시오.

부츠리 디에이 교회 건축이 마무리 되어 가고 있는데 첫 건축이라 시행 착오도 있었고 예정했던 비용보다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원세 집사님께서 기금마련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는데 여러 모양으로 재정이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캄보디아의 리더십 사역자들과 일군들이 제대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캄보디아에 자신의 나라를 책임지는 건강한 현지인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서 선교사들이 빨리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지병(당뇨병)이 있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씀 이제 다하셨죠?” 라는 질문에 “밤을 새워도 안 돼요” 라고 답하며 크게 웃으시는 선교사님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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