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변정훈

2년 전 고등학교 학생들과 멕시코 단기선교를 갔던 계기를 통해 십대 자녀들의 영육간의 책임이 교회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부모인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무슨 Parenting 클래스가 필요해. 그냥 두면 애들은 알아서 잘 자라. 나도 어릴 때 다 그랬어.’ ‘열심히 공부하고 학점 잘 받아오면 되는 거지, 뭐.’ ‘내가 말 안 해도 너희들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등등의 말이 일상의 대화에 자주 등장했었습니다. 그 후로 구체적 방향 없이 나름대로 이리저리 시도를 하던 차에 본 클래스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와 사추기의 행복한 동거법’이라 제목 자체도 재미있었고,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푼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클래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느꼈던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듯이 애들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고 잘 양육해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라고 보내주신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나의 못다 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대리자도 아니고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인생의 트로피도 아니며, 디도서 2장 말씀처럼 부모의 세대가 그 자식들의 세대를 성경대로 가르치고 본을 보여 제자 삼는 첫 번째 대상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표현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세대로서 ‘나는 원래 이러니까 이해하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 온 지 십 수년. 그것도 나의 고집이었던 것을 깨닫고, 교재에 나온 대로 매주 5가지 사람의 언어를 배우고 훈련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분 좋게 있다가 갑자기 신경질을 확 내는 것이나, 오늘 어땠냐는 질문에 ‘Fine’, ‘Nothing much’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것이 나를 무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를 지나며 겪는 성장통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일학년 남자 아이에게 첫 번째 사랑의 언어가 격려하는 말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격려하는 말을 하도록 노력하게 되면서 얼굴 붉히며 크게 부딪히던 것이 줄어들고 가끔 따로 나가 식사도 하고 얘기도 하는 일이 늘게 되었습니다. 5학년짜리 딸애는 같이 보내는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것을 발견하고, 가끔 카드 놀이도 하고 학교 얘기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얼마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깊이 발전해 가느냐가 관건으로 우리가 큰 죄나 시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듯이 우리의 아이들도 그런 부모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 때, 혹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모님에게 나아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바꿔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고 내가 먼저라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옛말에도 사십이면 불혹이라는데 사추기의 초입에 들어가며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것을 내 자신의 경험과 잣대로 판단하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다가 왜 자꾸 훈계만 하냐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던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보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께 연결이 되고 주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심장을 가질 때만이 진정한 변화가 생기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결국 아이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몸이 안 좋으신데도 열심히 준비하고 깨우쳐 주신 김애경 권사님과 각자 겪는 어려움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나누며 동참해 주신 반원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자녀들을 잘 섬기고 바르게 양육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교회 형제 자매님들과 저에게 지혜와 능력을 넘치도록 부어주시옵기를 간구하며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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